러시아 이희재 선교사, 미르선교회 통해 러시아 개신교 지평 넓혀 > World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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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수첩] 러시아 이희재 선교사, 미르선교회 통해 러시아 개신교 지평 넓혀
현지인들과의 돈독한 신뢰 공동체 구축이 선교에 큰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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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9-09-0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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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러시아의 지식인들 사이에는 푸친 대통령과 그의 추종 세력에 대한 좌절과 실망과 안타까움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별 방도 없이 총리로 내려앉은 것 까지 포함하면 실제 장기 통치로 누구 하나 제대로 창조적 비판을 할 수 없는 처지다.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흡수하는 분쟁 등으로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해 2-3년간 고통스러웠으나 그 원인을 미국에게 돌리는 언론 정책을 쓰고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것이 대중들에게는 먹혀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국 영사관은 이미 폐쇄된 상태이며 미국과 연관된 국제학교들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동·서양이 만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구 약 480만명으로 구 레닌그라드로 알려진 제정 러시아 시절의 수도였으며, 공산정권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에 25년 전 파송된 이희재 선교사는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인 선교사들과 함께 중보기도 모임과 당시 야간으로 운영되어 온 연합 신학교 사역을 시작으로 선교사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5여년이 지난 후 러시아연합신학교는 주간으로 변경되고, 제자학교 등 사역을 하던 중 러시아 복음화와 제자 양육, 단기 선교사 파송을 위한 International Missionary Fellowship을 형성하기 위해 MIR선교회·신학교를 공동 설립해 디베랴 현지인 교회 개척, 미르고려교회, 미르한인교회 등에서 현재까지 동역하고 있다.

 

이 선교사에 따르면 미르신학교는 복음주의 신앙을 견지하는 초교파 신학교로 18회에 걸쳐 약 1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이들 졸업생들은 현재 러시아 교회에서 목회자 혹은 교사로서 섬기고 있으며, 러시아 내의 개신교 확장에 일익을 감당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선교는 그리 만만치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는 워낙 광대하여 서부와 동부, 중부(시베리아)가 각기 크게 다를뿐더러 특히 하바롭스크와 같은 곳은 선교사 비자가 3개월 밖에 허락이 되지 않아 선교사들이 3개월 마다 한국을 다녀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열악한 주변 환경으로 상당히 많은 선교사들과 사모들이 중병으로 고생 가운데 있으며, 그 자녀들 또한 곤란을 겪는 등 선교지에서의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선교사는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서의 한인 선교사들이 섬기는 대부분의 교회 사정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구소련이 무너지고 처음 러시아가 열릴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교회의 현지인 이양은 간단 치 않은 현실이고, 시설이 좋아도 학생들은 좀처럼 신학교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등 신학교의 새로운 학생 충원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도시별로 선교사들의 협력과 연합 사역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지인들이 직접 섬기는 대형 교회들도 있고요. 물론 그들에게 직간접으로 선교사들이 영향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미르선교회 회원 선교사들은 지난 20여년을 함께 지내오면서 돈독한 신뢰 공동체를 구축하고 있다.

 

“도심에서 한 시간 거리에 떨어진 미르수양관에는 현재 난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미르 선교사들은 매주일 그곳에서 예배를 인도하며 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건물 수리를 돕기도 합니다. 주중 목요일에는 적은 숫자이나 러시아 목회자들과 함께 미르선교회에 모여 자발적으로 돌아가면서 강의를 하고 교제를 나눕니다. 사실 러시아 목회자들은 워낙 생존이 어려워 각자의 삶이 분주합니다. 서로 마음 적으로는 친한 것을 알지만 잘 만나지를 못합니다. 러시아인들은 말합니다. ‘단순한 친구관계는 사역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미르선교회 선교사들은 남다른 우정과 신뢰로 연결되어 있어 오랜 동안을 잡음 없이 함께 사역해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 속에서 러시아로 파송받아 어느덧 검던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바뀌어 있는 이희재 선교사는 최근 한두 달 전 몇 가지 의미있는 선교대회에 참석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0회 CIS(구소련, 현 독립국가연합)한인선교사대회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에서 열린 PCK(예장통합) 유라시아 권역 선교사대회에 다녀왔는데, 이 선교사는 이 둘의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나름대로 기도하며 마음고생을 했지만 각자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는 선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 번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다지고,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고 한다.

 

이희재 선교사는 어린 시절 스스로의 낭만과 그럴듯한 야망을 쫓아 살다가 주의 긍휼로 구원의 빛을 만나 극적으로 회심한 케이스다.

 

대학시절 74학번이었던 이 선교사는 나름대로 운동권 인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사회 개혁을 앞장서서 부르짖으며 정치가의 꿈을 꾸기도 했지만 학생운동 주도 후 1975년에 제적되고, 군에 입대하여 유격대조교로 복무하게 된다. 당시 부친의 소천 등으로 시대적 고뇌를 하던 중 1980년에 복학하고 2년 후에 졸업을 하게 되는데, 그는 1980년 7월 회심 이후 신학의 길을 걷게 된다. 1985년 임명선 권사와 몇몇 영락교회 청년들 함께 새하늘선교회를 창립, 그 후 1991년 예장통합 측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1994년 11월 총회파송 선교사로 러시아에 파송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요사이 한국 정치 사회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전혀 모르는 이들이 아니기에 관심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내 곧 의연해집니다. 어느새 한국 사회는 좌우가 극명하게 나뉘어져서 특히 믿는 이들 간에도 자신의 소신을 피다가는 서로 마음 상하기 십상입니다. 마치 동족을 타이르다가 “네가 누구관대” “우리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소위 권위충돌 문제가 생겨서 미디안 땅에서 오랜 광야 생활을 맛보야 했던 모세처럼 말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이희재 선교사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사실 예수를 처음으로 진실히 믿는 순간에 우리의 가치관은 이미 세상 가치관과는 다른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몸에 배인 가치관이 우리를 알게 모르게 힘들게 합니다. 인생에는 예측하지 못한 작은 일이 커다란 슬픔과 아픔을 초래하기도 하고,때로는 예비 된 사명의 은총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따금 제자신의 깊은 죄성을 보면서 탄식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과 원대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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