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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니더푸 목사 칼럼 - 엄마 나 언제 집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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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1-02-0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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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알코올 소독 냄새가 나는 병원에 가면 어릴 적 병원신세 졌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특별한 병이 있었던 건 아닌데 몸이 병약해서 병원에 자주 입원했었다.

오른 쪽 손등 위로 놓던 링겔 주사바늘의 아픔은 아직도 생생하다. 병실의 분위기는 어린 마음에도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답답하였다. 한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을 깨보니 밤중이었고 어머니는 내 손을 잡은 체 옆에 앉아 계셨다. 이런 상황이 나보다 더 갑갑했을 엄마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어린 아들은 이렇게 물었다.
 
“엄마 나 언제 집에 가?” 엄마는 늘 며칠만 더 있으면 된다고 하셨고 며칠이 며칠인지 알 수 없었던 나는 답답한 마음에 그저 우는 수밖에 없었다. 주로 어머니가 옆을 지키셨지만 늘 상 옆에만 계실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병실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다.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 했다기보다 그런 시간에 익숙해지는 것, 자기 내면과 마주할 시간이 많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 일 것이다. 천장 석고 타일의 문양을 관찰하거나 링겔 수액이 떨어지는 모습 보는 것도 따분해 질 때면 아파트 뒷산에서 놀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당시 살던 아파트 바로 옆에는 자그마한 산이 있었는데 계곡과 연못, 언덕과 하천 등 무엇 하나 없는 게 없어서 계절마다 물놀이며 곤충 잡기며 자연을 벗 삼아 즐길 수 있는 모든 놀이를 다 즐겼다. 봄이면 투명한 펄 모양의 개구리 알들이 여럿 뭉쳐 있던 신기한 모습과 소금쟁이가 긴 다리를 펴서 수면 위를 움직이던 모습, 가재와 송사리 잡겠다고, 어떻게 사용 하는 줄도 모르면서 그물망만 마냥 던져놓았던 기억들, 잠자리를 잠자리채를 사용하지 않고도 집게 손가락 만으로 잡던 짜릿함, 잠자리를 가지고 놀다 다시 놓아주면서 느끼던 기쁨 등 자연을 충분히 만끽하며 놀았던 날들을 떠올리곤 했다.
 
종종 그런 공상에 잠겼던 이유가 병실생활이 따분한 것도 있었고 어린 나이에 경험 한 것이 그런 것 밖에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생명에 대한 경이와 동경이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아픔과 정적과 울음소리로 가득했던 병실생활은 자연히 생명과 활기와 웃음으로 가득했던 자연 속의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몸이 회복되고도 잦은 입원과 퇴원의 반복 속에서 정상적인 유치원 생활은 힘들었고 자연히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 보다는 혼자서 무얼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자연은 언제나 나를 반겨주고 품어주고 함께 해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자연은 병약한 소년이었던 내게 좋은 친구였을 뿐 아니라 청년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능력을 보여주고 나타내주는 탁월한 초등교사였다. 해외자원봉사로 케냐와 우간다에 갔는데 난생 전봇대만한 선인장 앞에 마주 섰을 때 난생 처음 알 수 없는 외경심에 사로 잡혔다. 사파리 초원에서 흑백의 칼라가 너무 분명한 얼룩말을 보았을 때, 이 영롱한 피조물에게서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우간다 한 부족의 가정집에서 일박 스테이를 위해 30분을 칠 흙 같은 초원길을 가로 지르면서 올려 보았던 밤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보석 같은 별들이 알알이 들어와 박혀 있는, 말을 넘어선 아름다운 밤하늘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으며 나일 강 근원지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장엄한 광경 앞에서 나는 한없는 왜소함을 느꼈다.
 
이렇게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와 치밀함이 절대 우연일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낸 창조주가 있다고 추론하는 논증 법에 나는 매우 쉽게 설득 된다. 하지만 자연의 조화에 근거한 신 존재 증명에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다윗은 하늘을 보며 주의 영광을 노래했지만 어떤 이에게는 의미와 목적을 알 수 없는 공허하고 허무한 공간일 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자연은 그리스도인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신학적 개념에 그 풍성한 의미를 부여할 뿐”이라 말한 루이스의 지적은 옳다.
 
동시에 루이스가 고백한대로, 자연은 내게 영광스러운 하나님이 계신다고 가르쳐 준적은 없지만 자연은 영광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었다. 하나님의 신성으로 충만한 자연을 마주하게 되는 그 순간만큼은 다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날 고민하게 만드는 교회의 크고 작은 일들도, 정해진 기간 내에 마감해야 하는 원고도, 4,570원 남은 통장의 잔고도. 압도되는 경외심은 이 모든 것들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 경외의 시간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머리 지끈거리는 복잡하고 분주한 일상에 시동을 건다. 아마도 이번 주가 피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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